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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계승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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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 '''왕정의 종식과 그 방식''' 계승전쟁의 가장 큰 결과는 왕정이 끝났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끝난 방식'''에 있다. 루이나의 왕정은 혁명으로 무너지지 않았고, 외세에 의해 폐지되지도 않았으며, 국왕이 처형당하지도 않았다. 1372년에 왕관을 준 것과 같은 형식의 회의가 같은 장소에서 왕관을 거두어들였다. 이 방식은 이후 루이나 정치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이 나라가 내놓는 답은 언제나 '''"주어진 것"'''이며, 주어진 것이므로 조건을 붙일 수 있고 거두어들일 수도 있다는 관념이 여기서 확립되었다. 1988년 [[1.10 민주화 선언]] 당시 시민 단체들이 발표한 성명에도 1885년의 논리가 인용되었다. '''제1공화국의 성격''' 1885년 헌법은 '''왕을 없앤 자리에 다른 강자를 들이지 않겠다'''는 경계로 가득했다. 대통령의 권한은 극도로 제한되었고, 실질적 국정 운영은 의회와 내각이 담당했다. 이 구조는 36년간 유지되다가 제1차 세계대전의 총력전 경험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1921년 제2공화국 헌법에서 행정부 권한 확대로 수정되었다. 한편 제3조가 규정한 세습 직위 금지의 개정 불가 조항은 이후 루이나 헌법 전통의 특징이 되었다. 1989년 제6공화국 헌법이 대통령 연임 제한을 "어떠한 개헌 절차로도 변경할 수 없는 영구 조항"으로 명시한 것도 이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 '''정당 구도의 재편''' 전쟁은 기존 정당 구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왕당파와 연루된 보수 정파는 사실상 소멸했고, 그 공백은 두 갈래로 메워졌다. 하나는 전쟁을 이끈 온건파가 중심이 된 자유주의 계열, 다른 하나는 도시 노동자와 비국교회 기반의 급진 계열이었다. 이 구도는 1900년대 노동 정당이 등장할 때까지 이어졌다. 왕당파 전통은 소수 정치 세력으로 살아남았다. 남부 고지와 서부 내륙의 일부 선거구에서 명맥을 유지했으며, 1890년대까지 하원에서 열 석 안팎을 확보했다. 다만 이들의 강령은 왕정 복고가 아니라 지역 자치 확대로 옮겨 갔다. 헌법 제3조가 복고를 원천 봉쇄한 이상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참정권 문제''' 1885년 국민투표의 선거권이 남성에 한정되었다는 사실은 제1공화국 성립의 한계로 오래 지적되었다. 전쟁 기간 여성들이 구호와 생산에 대규모로 동원되었음에도 새 헌법은 참정권을 확대하지 않았고, 이는 이후 수십 년간 여성 참정권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보통선거가 도입된 것은 1921년 제2공화국 헌법에 이르러서였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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